스포츠와 미디어의 만남
스포츠와 미디어가 처음 관계를 맺은 것은 1733년 5월 5일 미국의 「보스턴 가제트Boston Gazette」라는 인쇄매체에 스포츠 이야기가 실리면서부터다. 1883년에는 퓰리처Pulitzer의 「뉴욕 월드New York World」에 최초의 스포츠 부서가 설치되었다. 최초의 스포츠 라디오 방송은 1921년 RCA 설립자 데이비드 사노프David Sarnoff가 주관한 헤비급 복싱 경기 방송이었고, TV에서의 첫 방송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이루어졌다. 1939년에는 메이저리그 야구와 프로 풋볼 게임이 처음 방송되었으며, 이 시기의 영국도 BBC가 윔블던 남자 단식을 통해 스포츠 중계를 실험하게 되었다. 이후 1947년 포드사와 질레트시는 월드시리즈의 TV 중계를 후원하고 그 대가로 6만 5천달러를 지불하기에 이른다.
19세기 중반 무렵 스포츠 신문은 도시인들에게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고 홍보하였다(Adelman, 1986). 스포츠를 조직화하고 상업화하는 데에 일조하게 된 것이다. 또한 스포츠는 신문의 구독률과 방송의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그 위상이 높아졌고, 이후 신문사는 스포츠의 조직화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과 「뉴욕 데일리 뉴스New York Daily News」의 발행인인 패터슨은 시카고와 뉴욕의 아마 복싱 골든글로브 경기를 도입했고, 스포츠지 편집장이었던 워드는 야구 올스타 게임과 대학미식축구 올스타 게임을 고안했다.
레버와 웰러(Lever & Wheeler, 1984)의 분석대로, 대규모 관객을 동원하는 기업적 스포츠와 개인의 여가를 위한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던 1870년대부터 영상 매체인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1950년대까지의 스포츠와 매스미디어의 관계는 밀월 기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스포츠 신문 기자들은 선수들을 정의롭고 다정하며 신사도를 지키는 영웅으로 격상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운동선수들이 TV에 노출되고 정보 전달에서 TV와 경쟁하면서 스포츠 신문의 기자는 선수의 사적인 비리와 실책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는 데 노력했고, 이로써 스포츠와 매스미디어 간에는 갈등이 빚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다시 스포츠와 매스미디어 간에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타협적인 시기를 형성한 것으로 이해된다.
라디오나 TV에서 스포츠 중계도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스포츠 단체가 라디오나 TV 중계로 인하여 관중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고, 더욱이 당시는 수익원을 입장료 수입에 의존하던 단계라 이들 단체의 주요 수익원을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929년 아메리칸리그 구단주들은 라디오 중계방송 금지를 제안하였고, 1938년 뉴욕의 세 팀이 5년간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다가 1930년대 말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Dodgers)는 라디오 중계를 시작하였는데, 우려한 바와 달리 관중 수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영국의 축구클럽들 역시 관중 수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1960년대까지는 TV 방송을 꺼렸지만,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지속적인 축구방송은 오히려 팬들의 관심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라디오나 TV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도 있지만 관중이 오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었기에 리그는 이들로부터 중계권료를 받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신문사의 경우에는 스포츠 보도에 대한 중계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신문이 스포츠 이벤트의 체계화와 상업화를 홍보해주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와 미디어의 공생관계
스포츠 중계료는 스포츠 단체의 가장 큰 수익원으로, 이는 리그 전체뿐만 아니라 각 구단에도 해당된다. 즉, 리그에서 계약한 중계권료를 각 구단에 분배하여 시장성이 낮은 팀에게도 안정적 재원 확보의 기회가 제공되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미국 슈퍼볼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트 로젤리가 고안한 것이다. 이후 이러한 리그 수익의 분배 형식은 많은 스포츠 리그에서 벤치마킹되었다.
미디어는 스포츠의 재정 수익 측면과 홍보에 기여하는 한편, 스포츠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즉, 경기 일정을 미디어 편성 시간에 맞추거나,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위해 하프타임제도를 쿼터제로 바꾸는 등 경기제도나 규칙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미디어는 비디오 분석 등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이를 따라하면서 해당 종목이나 기술을 보급시키는 역할도 하게 된다. 아울러 스포츠의 중계는 일반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 TV 수상기 매출이 두 배 이상 늘고, 요식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등 일반 경제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반면 스포츠가 미디어 산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사실성에 근거한 보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데이터 기반 정보의 가치가 높아 뉴스나 기사에서 활용되는 것이 그 예다. 또한 인간 승리의 감동 등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하고, 극적 상황에서의 역동성과 희열이란 요소로 인해 영화화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기술 발달에도 기여하여 왔는데, 정지 화면, 느린 화면, 화면 재생, 이중 화면, 클로즈업 등의 발달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미디어나 스포츠 단체 모두의 입장에서 스포츠 중계는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낳고 있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이 인기가 많은 이벤트일수록 이러한 양상이 심화되어 중계권료 또한 급증하게 된다. 올림픽에서 TV 중계권료가 발생한 것은 1960년 로마 대회에서부터로, 당시 조직위원회는 미국의 CBS와 계약, 39만 4천 달러에 미국 내 독점 중계권을 팔았는데 이는 전액 조직위의 몫으로 돌아갔다. IOC가 중계권료 수입을 벌어들인 것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으로, 조직위는 미국 ABC 방송으로부터 450만 달러의 중계권료를 받아 그중 15만 달러를 IOC에 기부하였다. 이후 IOC는 중계권료에 대한 수익성을 높이 인정하여, 1974년 총회에서 ‘IOC 헌장’에 들어 있던 아마추어리즘에 관한 조항을 삭제하고, ‘다음 올림픽부터 중계권료의 3분의 1은 IOC 몫’이라는 규정을 현장에 명시하기에 이른다.
애초에 상업성을 표방하고 시작한 월드컵의 경우, 축구 중계권을 따내기 위한 세계 방송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계권료도 급상승하였고, 이제는 고도의 미디어 기술력을 자랑하는 경연장이 되어 TV 중계가 월드컵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되었다. 2006 독일월드컵의 중계권료는 약 1조 2,450억 원에 이른다. 이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중계권료 402억 원의 30배를 넘는 금액이다. 특히 중계권료는 2002 한일월드컵부터 두드러지게 상승하는데(약 1조 660억 원), 이는 중계권 협상 방식이 변화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과거와는 달리 중간 에이전시가 개입하여 일괄적으로 중계권을 구매한 뒤 이들이 방송국들과 개별적인 협상을 하면서 중계권료의 상승을 부추기게 된 것이다.
참조 : 스포츠마케팅의 날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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