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의 유래와 유형
모든 문화산업에서 주요 소비자인 팬의 기원은 스포츠산업에서 유래되었다. 19세기 말, 오락적 요소가 강조된 이벤트의 성격을 가진 스포츠가 본격적인 산업화 양상을 띠자 팬이 등장한 것이다. 팬이라는 어휘는 당시의 언론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관객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로 사용하며 발생했다. 그래서 팬의 의미는 ‘과도하고 오도된 열정’이라는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었다. 즉, 당대의 언론은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오락에 불과한 스포츠에 열광적인 감성을 표출하는 관객들을 비판적으로 보며 팬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팬들이 스포츠를 시청하는 동기를 미디어의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팬심’ 범주로 승리를 통해 스릴을 맛보려는 욕구, 그리고 경기가 주는 흥분과 승자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그것이다.
둘째는 ‘학습’ 범주로 선수들이나 팀에 대한 확인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정보의 획득 욕구로 인지적 범주에 해당한다.
셋째, ‘휴식’ 범주로 사회적 동기로서 휴식을 취하려는 욕구, 스포츠를 시청함으로써 충분한 기분 전환과 간혹 음주의 기회를 갖기 위한 동기가 여기에 포함된다.
넷째는 ‘사교’ 범주로 이는 가족 혹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욕구로 스포츠를 참조하는 것에 그친다.
다섯째, ‘시간 보내기’범주는 별다르게 볼 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에 스포츠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튜더(Tudor, 1974)는 스타와 팬과의 관계를 친밀도와 몰입의 정도에 따라 각각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친밀도에 따라 ‘자기 동일시’와 ‘감정적 친화’로 구분되고, 몰입의 정도에 따라 ‘투사’와 ‘모방’이란 범주로 나뉘는 것이다. ‘자기 동일시’는 친밀도가 매우 높은 팬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스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 선수가 경기에 패할 경우 마치 자신이 패배한 듯 느끼는 것을 말한다. ‘감정적 친화’는 이보다는 약한 친밀도를 갖는 범주다. 한편, ‘투사’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스타와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려는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 팬들을 말한다. 이 때문에 스타는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요구받게 된다. ‘모방’은 이보다는 약하나 스타의 행위나 의상, 장신구, 머리 모양 등을 선호하고 따르려는 정도를 의미한다.

팬이 좌우한다
스포츠마케팅의 성패는 근본적으로 팬들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스포츠마케팅의 1차 시장에서 팬들을 대상으로 하여 입장료 수입이나 기타 부대 수입을 올리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팬들은 기업들의 스폰서십이나 미디어 중계권 등으로 구성되는 2차 시장의 성패까지 좌우한다. 즉, 해당 스포츠 이벤트에 팬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야만 기업들의 광고 및 홍보 효과가 높아지므로 팬들의 규모에 따라 스폰서십의 참여 혹은 비용이 결정되는 것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대규모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기업들로부터 거대한 수익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도 수백억 명의 전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는 덕분이다. 이 때문에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시청률을 통해 광고 수익을 거두는 미디어들도 스포츠이벤트에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중계권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다.
국내 프로스포츠가 수익 창출에 고전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결국은 팬들의 관심과 참여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스포츠이벤트를 매니지먼트하는 1차 시장에서의 마케팅 능력이나 시장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은 2차 시장으로 파급 효과를 얻기가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통상 1~2%대로 알려진 프로 야구나 프로 농구의 TV 시청률은 방송 프로그램 중 최하위권이다. 시청률은 결국 팬들의 관심도를 대변하는 기본적인 척도가 된다. 경기장을 찾는 관중 규모를 살펴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2003년 기준 미국 메이저리그의 평균 관중 규모는 28,000명 선좌석점유율 61.6%)으로 한국 프로 야구의 5,000명 선(좌석점유율 24.52%)의 5배가 넘는다. 미국 프로 농구 또한 17,000명선(좌석점유율 87.42%)으로 한국프로 농구의 3,500명 선(좌석점유율 60.93%)과 비교해 거의 5배에 이른다. 축구의 경우 일본과 비교해보면, J1 프로 축구 평균 관중이 17,000명선(좌석점유율 70.90%)으로 한국 프로축구의 9,000명선(좌석점유율 24.63%)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유럽 리그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프리미어 리그의 평균 관중은 34,000명 선, 분데스리가가 30,000명선이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연봉은 물론 스폰서십 시장 규모는 더욱더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제1회 WBC에서 미국 선수단의 총 연봉이 약 1천480억 가량인 반면 국내파 선수들의 총 연봉은 61억9천300만원 정도였다. 또한 2002년 미국 MLB 는 15개의 공식 스폰서 기업과 아시아, 유럽, 라틴 등 36개의 지역 스폰서와 계약을 맺었고, 각 팀별로도 별도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는 타이틀 스폰서와 모기업으로부터의 지원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스폰서가 없는 실정이다.
팬들의 차이가 이만큼 크게 나타나는 것은 구단의 마케팅 노력과 더불어 근본적인 시장 환경에도 기인한다. 무엇보다도 스포츠팬의 규모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스포츠 산업은 여가 활동으로 얻어지는 부산물이므로 대중의 풍요는 스포츠에의 참여도를 높이는 요건이 된다. 미국의 GDP는 우리나라의 18배가 넘는데, 2002년 기준 스포츠 소비 수준을 보면 미국은 GDP의 3.35%, 일본이 GDP의 3.88%로 우리나라의 2.15%와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만큼 마음 놓고 문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으니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지출에서도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포츠조직의 입장에서는 팬들의 다양한 유형을 ‘충성도’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더 많은 팬을 유인하고 이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에서부터 스포츠마케팅은 시작되는 것이다. 일단 스포츠팬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이들은 개별적인 소비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집단적인 소비 행태를 보이며 식사나 술 등의 사회적 활동과 함께 행하기 때문에 연쇄적인 확산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프로스포츠의 전반적인 시장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제 수준을 비롯하여 선수 수급 시스템, 도시의 총 인구수, 지역주민의 개인 소득 및 소비 수준,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그리고 해당 연고지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 능력을 지닌 기업 등의 관점에서 세밀한 조사 분석이 필요하다. 국내의 경우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시장성의 한계가 있다고 하여도, 리그나 구단 차원에서의 마케팅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의 경우 팬들의 열렬한 호응과 지지를 받고 있어 이제는 기업들에게서 수백억 원 이상의 스폰서 수익을 창출하고 미디어와의 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장에서 고액의 중계권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공적인 사례를 본보기로 하여, 이제 여타 프로 스포츠 리그 및 구단에서도 냉철한 시장 분석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여 팬들을 유인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가끔은 국내 스포츠마케팅의 척박한 시장 상황의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일부 전가시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가령 온 국민을 열광시키는 축구 대표팀 경기 후 “국내 리그에도 온 국민이 관심과 참여를 보여야 한다”며 진정한 축구팬으로서의 책임을 당부하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한 예이다. 뿐만 아니라 인기가 떨어져 어려움을 겪는 종목들마다 경기단체의 운영 방식에 대한 촉구보다는 국민들이 이러한 종목을 살려야 한다며 경기장 방문을 계몽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접할 때면 뭔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찬가지로 마라톤이나 휘트니스센터와 같은 각종 참여스포츠에서조차도 건강의 중요성을 내세워 부담스러울 정도로 스포츠를 강요하는 현상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동기를 지니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여가 활동이지, 팬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이고, 교육적 가치나 신체적·사회적·경제적 가치 등은 스포츠를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다. 전문적인 스포츠 마케터가 아닌 일반 팬들이 스포츠를 대하면서 여러 심오한 가치를 부여하려 애쓰거나 그것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스포츠는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스포츠의 상품적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이를 여러 형태로 가공하고, 팬들의 관심을 유인하는 역할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더 이상 단순히 팬들에게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참조 : 스포츠와 엔터네인먼트는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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